2007년 04월 16일
기찻길 옆 동네 아이였을 때
오늘 아이와 기차놀이를 오랫만에 하였다. 사실 기차놀이는 설치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기에 큰 맘을 먹어야 한다. 요즘 준원이는 갑자기 '방귀대장 뿡뿡이' 비디오에 빠져 시도 때도 없이 '뿡삥이'하며 비디오 틀어달라고 졸라댄다. 만약 안 틀어주면 울기도 하고 한 번만 하며 매달리고 쇼파에 앉아 눈 안나빠지게 멀리 앉아 있으니 틀어달라고 애걸복걸한다. 마음이 약해져 한번 틀어주면 멈출 줄 모르는 게 문제다. 한 시간이나 보고 보아도 아쉬워한다. 급기야 눈물 콧물 흘리며 울어댄다. 그래서 비디오 생각 안나게 신나게 놀 수 있는 '기차놀이'를 시작했다.
우리집도 내가 중학교 입학하면서 고향을 떠나 시내로 이사왔다. 기차소리 나지 않는 이사 첫날 밤, 참 낯설어 잠이 오지 않았다. 그후, 내 마음 속에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덜컥덜컥 나기도했다.
기차놀이란 레일을 연결시키고 나서 역도 놓고, 다리를 놓고, 교각을 세워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등을 만들어 기차가 다니게 하는 것이다. 아이와 함께 시설을 설치하고 기차가 지나갈 때 손을 흔들며 논다. 준원이는 나무를 꽂고 가로등을 세운다. 요즘은 레일을 연결시키는 것까지 발전했다. 자기가 해냈다고 박수치며 좋아라한다. 기차가 지나갈 때 손도 흔든다. 기차가 다리를 지나고 가로수 소나무, 전나무 앞을 지난다거나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다고 열심히 중계방송도 해준다. 그러다가 기차와 관련된 이런저런 나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내 고향은 바로 기찻길 옆 마을이다. 겨울밤 뜨뜻하게 지핀 방구들에 누워 기차가 마을을 지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다. 그 얼마나 아득하게 멀어지는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나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 오면 혼자 있기를 좋아했다. 그럴 때마다 동네 뒷산 '봉째'에 올라 풀밭에 눕는다. 휙휙 지나가는 기차를 향해 손을 흔들었고, 언제가는 내가 저 기차를 타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 떠나는 꿈을 꾸곤 했다.
기찻길은 아이들의 놀이터다. 그래서 종종 기차에 치여 사람이 죽는 사고가 일어났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고는 초등학교 동창의 남동생이 당한 사고였다. 마을 입구에 사고를 낸 시커먼 기차가 멈춰 있는 모습이 너무 두려웠다. 거대한 막힘이었다. 누런 가마에 덮여 있는 친구 남동생의 발이 기억난다. 아주 작고 까만 발이었다. 해질 녘 날씨마저 싸늘했다. 그 애네 집은 아빠가 집을 나갔고 엄마가 동네 일을 거두며 남매를 키웠는데 그 사고 이후 마을을 떠나갔다.
우리집도 내가 중학교 입학하면서 고향을 떠나 시내로 이사왔다. 기차소리 나지 않는 이사 첫날 밤, 참 낯설어 잠이 오지 않았다. 그후, 내 마음 속에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덜컥덜컥 나기도했다.
나의 기억 속으로 빠져 있을 때, 준원이는 어느 새 기차놀이를 철거했다. 레일을 빼고 기차를 뒤집어 놓았다. 주섬주섬 기차셋트를 정리하는데 잊혀졌던 기억들이 후루룩 올라왔다. 아이와 함께 놀다보면 이렇게 어른이 되어 잊고 있던 기억의 샘을 퍼올리는 일이 종종 있다. 그리움 보다 하나의 '발견'이다.
오늘 준원이는 다행히 '뿡뿡이'를 몇 번 찾았지만 울지는 않았다. 휴~


# by | 2007/04/16 20:37 | 그리운 것들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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